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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생태소설

자연생태 거미 이야기<4>엄마의 죽음

민간인의 출입이 거의 없는 민통선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찾아왔다. 아침식사를 마친 병사들은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족구를 즐기고 있다.
 무심한 구름은 방향키 잃은 조타수처럼 각자의 마음속에 양 구름도 되었다가, 비행기 구름도 되었다가 사라져 간다.
계절을 재촉하는 풀벌레 소리는 저마다의 세레나데를 부르며 님을 찾고, 상수리아줌마도 어느 새 다가올 계절을 맞이하여 주황색 앞치마를 두르고 겨울 채비에 분주하다.
 밤에 짠밥 통에 여러 마리의 산돼지들이 다녀 간 모양이다.
밤새 뒤척이며, 들었던 소리 중에 하나가 바로 산돼지 아저씨들의 먹성 좋은 속삭임을 알게 되었다.
 아라이는 세상 밖으로 나와 처음 맞이하는 세상구경에 설레 였다. 엄마의 모습 저편으로 일부분만 보이는 하늘이지만 늦가을 하늘은 명주처럼 아름다웠다. 처음으로 대하는 낯설지만 아름다운 풍경들에 넋을 잃고 말았다.
“아라이 내말 들리니” 엄마의 거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아라이는 잠시 후 대답한다.
“네. 엄마 듣고 있어요.”
“사랑하는 내 딸 아라이..
 엄마가 없더라도 아라크와 다른 형제들과 잘 지내야 한다. 너희들 주변엔 너희의 생명을 위협하는 새들 분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이 많으니 서로 돕고 살아야 모두 살 수 있단다. 혼자만 살려 하면 너희 모두가 죽을 수 있고 서로 믿고 도와가면 모두가 같이 살 수 있단다. 알았지? 엄마 말 명심해라.“

“네 엄마. 그런데 왜 저희들에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
“엄마는 곧 또 다른 세계로 여행을 가야한단다. 아주 멀고도 험한 여행이지. 물론 아라이나 우리 아가들이 가야할 여행보다는 쉬운 여행이지만.....”
“우리가 가야할 여행이 무엇인가요?”
“그건 엄마도 알 수 없어요. 모두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 가야하니까”
엄마가 상수리아줌마에게 무어라고 말을 하지 만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아줌마는 말없이 있다가 결심한 듯 엄마에게 무어라고 말한다.
상수리나무아줌마의 잎들이 바람결에 재잘거리듯 떨어 운다.

따듯한 햇살이 그리 넉넉하지 못한 10월 끄트머리
크리스마스도 불과 2달 밖에 남질 않았다. 
아침, 저녁으론 제법 쌀쌀하다. 추운 동장군이 북으로부터 내려올 듯싶다. 추위에 약한 장병들은 벌써 내복을 입기 시작했다.
 땅거미가 짙게 드리우니 초승달이 더 선명하다.
가장 먼저 초승달과 인사하는 금성이 오늘따라 애교스럽게 반짝인다.
아라이는 엄마 걱정에 세상 구경을 잠시 잊었다. 
“엄마, 괜찮지...”
“응, 괜찮아”

금성이 부리는 애교에 질투심이 유발한 별들이 앞 다투어 떠오르니 전선의 밤은 장엄한 불꽃놀이를 연상케 한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시계추처럼 카시오페아와 북두칠성이 돌고 그 주변에 많은 혹성들이 앞 다투어 돌고 있다.
아라이는 추위에 떨고 있었다. 세상 밖으로의 설렘과 다양한 풍경들 그리고  처음 만나는 다정한 엄마의 모습까지.
낯설지만 어색하면서도 신기한 세상의 모든 것들을 대하는 아라이의 마음은 비장하기까지 하였다.
 비록 산고의 고통으로 홀쭉해진 엄마의 모습이지만 따뜻한 눈빛과 정감어린 어감, 나의 엄마에 대한 사랑 하나만큼은 오랫동안 지켜 가리라 굳게 다짐하면서 아라이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전방에서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예측불허의 일교차로 인한 날씨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이 얼어 버린 듯하다. 재잘거리던 상수리나무아줌마의 잎들도  이 계절의 시련처럼 모두 떨어져 나가고 몇 잎만 남아 추억을 이야기 하려는 듯하다.
아라이는 눈을 뜨자마자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엄마는 대답이 없다
“엄마, 장난하지 말고 대답해 주세요.”
“엄마, 엄마”
아라이의 부름이 다급해지자. 다른 형제들도 엄마를 같이 부르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엄마.........”
그러나 엄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때 상수리나무 아줌마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애들아, 엄마는 어젯밤에 돌아가셨어.”
아라이와 형제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거짓말이야”  하고 소리쳐 댔다.
상수리나무 아줌마는 난처한 모습을 보이며, 아라이를 찾기 시작했다.
“아라이, 아라이, 누가 아라이니?....”
“네, 제가 아라이에요.”
“아라이, 아줌마 말 잘 듣거라.

엄마는 너희들을 무척 사랑하며, 꼭 형제들 끼리 서로 도와가면서 살라고 말씀하셨단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지?
그리고 이 아줌마에게는 너희들을 보호해 달라고 말씀하셨지, 엄마를 대신해서 이 아줌마가 잘 보호해 줄테니 너무 슬퍼하거나 걱정하지 말아라.“
엄마를 잃은 슬픔에 아라이와 그 형제들은 많은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전선에서의 하루는 엄마 잃은 슬픔에 길어져만 같다.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겨울.
겨울이 긴 동부전선에서 거미의 삶이란 겨울을 이겨내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엄마와의 짧은 만남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겨울을 이겨내고 살아남기 위한 생존이 무엇보다는 우선인 지금.
엄마 잃은 슬픔은 기나긴 겨울처럼 길어져만 갔다.
전선에서의 겨울은 생각보다 길었다. 
자고나면 쌓이는 눈은 이제는 낭만보다는 현실이 되었고, 엄마의 죽음을 가슴속에만 묻기엔 너무도 긴 세월이었다.
군견들과 장병들의 구보소리가 전선의 잠을 깨우고, 또 밤이 되면 자연의 자장가소리에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