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 비가림하우스에서 포도 순 정리로 바쁜 일손을 보내고 있는 농부를 향해 걸어갈 때 문득 발밑의 땅이 전해주는 촉감이 유난히 부드럽고 포근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토록 건강한 토양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였을까 그 노력이 문득 궁금해졌다.
그 순간, 포도순을 제거하느라 땀방울을 흘리는 오효환 대표가 눈에 들어왔다. 30년 포도 농사의 서사를 들려주는 한 권의 책 같았다.
“하우스 안, 덥죠? 과일 농사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는 탄저병이에요. 그런데요, 지난해 순환팬을 설치하고 나서 그 효과를 톡톡히 봤죠. 기자님 만나자마자 이 얘기부터 하고 싶었어요.”
오효환 대표는 환하게 웃으며 하우스 천장과 중간 부분을 가리켰다. 그곳엔 순환팬이 설치되어 있었다.
“보이시죠? 저기 팬이 더운 공기를 밖으로 내보내고, 내부는 시원하게 유지해줘요. 안성시농업기술센터 농업기술상담소의 오준옥 지도사님이 포도 농가의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환풍기 시범 사업을 추진해 주셨어요. 정말 고맙죠.”
“사실 남들은 ‘무슨 효과가 있겠어?’ 하고 의심할 수 있지만, 저는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설치했어요. 결과적으로 지난해 탄저병 발생이 거의 없었어요. 팬이 돌면서 포도 이파리도 팔랑거리고, 더운 바람도 빠져나가고요. 한번 틀어볼까요?”

그가 버튼을 누르자 하우스 안에 설치된 환풍기들이 윗부분과 아래에서 동시에 작동하며 시원한 공기를 순환시켰다. 바깥 날씨와 달리, 하우스 안은 쾌적했다.
청포도가 익어가기 시작하는 7월이 되면 소비자들이 먼저 찾는다는 오효환 대표. 그의 고온장해 극복 노하우는 올해도 많은 농가에 귀감이 될 것이다.
고온장해 극복, 상품 과일 20~30% 더 생산
“고온기에는 시설하우스 안 온도가 50°C가 넘기도 해요. 그래서 고온 피해를 막기 위해 포도나무에 물을 뿌려보기도 했죠. 하우스 온도를 1°C라도 낮추기 위해 스프링클러를 사용했는데, 문제는 습도가 너무 높아져서 탄저병을 잡을 수 없다는 점이었어요.”
오효환 대표는 당시의 어려움을 이렇게 털어놨다.
“그에 비해 환기팬은 정말 효과가 있어요. 더운 바람을 밖으로 내보내고, 팬이 돌아가면서 환경이 좋으니까 나무도 좋아하고, 일하는 사람도 훨씬 덜 지치죠.”
그는 환기팬 도입 이후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하우스 온도를 1°C 만이라도 낮출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어렵거든요. 그런데 환기팬 덕분에 농장 내부 습기가 줄면서 탄저병 발생이 크게 줄었고, 생육환경이 개선되니 덕분에 상품성도 높아졌죠. 아마 상품화율은 기존보다 20~30%는 늘었어요.”


그게 바로 농사짓는 즐거움이죠
“올해도 날씨가 잘 도와줘야 포도 농사가 잘되죠. 지금까지는 포도 순이 쑥쑥 잘 올라오고 있어요.”
오효환 대표는 포도 순을 살피며 올해 작황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가 운영하는 포도농장에서는 샤인머스캣, 거봉, 홍부사, 자옥, 블랙사파이어 등 무려 20여 종의 다양한 품종이 있다. 청포도부터 새콤달콤한 맛과 다채로운 색감, 독특한 모양까지—그야말로 ‘포도 백과사전’이라 불릴 만한 곳이다.
30년 포도 재배
“정직하게 농사짓자는 게 저희 30년 농사의 신념입니다. 그래야 소비자와 오래 함께할 수 있죠.”
오효환 대표는 단호하게 말했다.
“눈속임하는 농사는 절대 하지 않아요. 빨리 키워서 돈을 더 벌기보다는, ‘맛있어서 다시 찾게 되는 포도’를 만들기 위해 늘 고민하고 정성을 쏟는 거죠.”
그는 소비자와의 신뢰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포도 밭에서 포도를 먹어보고 사겠다고 따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그는 ‘아직 안 익었으니 다음에 와서 먹어보라’고 말한다.
“제가 먹고, 제 자식들이 먹는 포도니까요. 그런 마음으로 키우고 있어요.” 그가 자신 있게 말한다.
“7월 중순쯤 오시면, 진짜 맛있는 포도를 맛보실 수 있을 겁니다.”
* 이 기사는 팜앤마켓매거진 2025년 5월호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