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것이 없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식탁에서만 통용되는 문장이 아니다. 농업 현장에서도 이 말이 현실이 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이 감자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자껍질을 화장품 소재로 재탄생시키며, 농업부산물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했다. 우리가 무심코 버리던 감자껍질이 피부재생과 항노화 효과를 갖춘 기능성 원료로서 산업적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매년 발생하는 농업부산물의 양은 약 934만 2천 톤에 달한다.
이 중에는 볏짚, 과일 껍질, 줄기, 뿌리, 불량작물 등 다양한 종류가 포함되어 있으며, 감자 가공 시 버려지는 껍질과 절단된 감자만 해도 연간 최소 10만 톤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막대한 양의 부산물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동안 대부분은 퇴비나 사료로 활용되었고, 상당수는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자원순환경제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이제 농업부산물도 '버릴 수 없는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강원농기원은 감자껍질에 주목했다. 각질형성세포에 인위적으로 상처를 낸 뒤 감자껍질 추출물을 처리한 결과, 상처 회복 속도는 무처리 대조군 대비 약 3배 가까이 빨랐다.
특히, 300㎍/㎖ 농도로 처리한 군은 58.9%의 회복률을 보이며 탁월한 피부재생 효과를 입증했다. 자외선UVB으로 손상된 피부섬유아세포에서도 활성산소종이 최대 40% 억제되었고, 피부 탄력 유지에 중요한 프로콜라겐의 생성량이 유의미하게 증가하여 노화 방지 효과도 함께 확인되었다.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업사이클링 사례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순환경제 액션플랜’을 통해 농식품 부산물의 산업적 활용을 장려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버려지는 쌀겨를 이용한 고급 화장품 원료 개발이 활발하다.
국내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농업 부산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능성 소재로의 전환 가능성이 다방면에서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체계적인 연구와 상용화 사례는 부족한 편이며, 감자껍질의 활용처럼 구체적인 산업 적용으로 이어진 사례는 드물다.
감자는 강원특별자치도의 대표 특화작목으로, 감자 가공업체가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이번 연구 성과는 지역 산업의 부가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기존에는 처리비용 부담으로 인해 폐기되던 부산물이, 이제는 지역 기업과 연계하여 수익성 있는 제품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환경보호를 넘어 농업-과학-산업-소비자 간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로의 진화를 의미한다.
향후에는 감자껍질을 비롯해 각종 채소, 과일 부산물에 관한 연구를 더욱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성분 분석과 기능성 평가, 추출 공정의 최적화, 안전성 검증 등을 종합적으로 수행하여 보다 넓은 산업 분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기반을 갖춰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한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과 산업 간 협력 플랫폼도 필요하다.
강원농기원은 “이번 연구는 단순한 실험 성과를 넘어, 농업부산물의 산업화와 지역경제 활성화, 나아가 환경보호까지 아우를 수 있는 지속가능한 모델을 보여준 사례”라고 자평한다. 앞으로도 다양한 부산물의 가치를 발굴하고, 이를 활용한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다.
이제 농업은 단순한 생산을 넘어, ‘순환’과 ‘연결’의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감자껍질은 그 시작일 뿐이다. 농업부산물 업사이클링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이는 지속가능한 미래 농업의 방향을 제시하는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다.
* 이 기사는 팜앤마켓매거진 2025년 5월호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