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부산물, 이제는 ‘공급구조’를 설계할 때
현장에서 식품 제조·가공 부산물을 바라볼 때마다 이런 질문을 한다. “왜 이렇게 많이 발생하는 자원이, 산업 원료로는 안정적으로 쓰이지 못하는가?”
사과즙을 짜고 남는 사과박, 감귤 착즙 후 발생하는 과피와 과육, 맥주 제조 후 남는 맥주박, 커피 가공 과정에서 떨어져 나오는 실버스킨. 이들은 이미 영양 성분과 기능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처리 대상’에 머물러 있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제품화 사례도 이미 존재한다. 그럼에도 산업이 확장되지 못한 이유는 분명했다. 공급이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보다 먼저 필요한 것, ‘공급 체계’
최근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 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치 소비를 중심으로 한 업사이클링 푸드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세계시장은 2023년 551억 달러에서 2033년 859억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국내 현실은 다소 다르다. 농산부산물은 대량으로 발생하지만, 발생량의 체계적 파악이 부족하고 원료 규격화 기준이 정립되지 않았다. 또한 수거·집하·전처리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 기업이 대량으로 안정적인 확보가 어려운 구조다.
기업은 “좋은 원료가 있다면 쓰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언제, 얼마나, 어떤 품질로 공급 가능한지”를 명확히 제시하기 어렵다. 이 간극을 메우지 못하면, 농산부산물 산업은 언제나 ‘아이디어 단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모델’을 만들기로 했다
강원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은 26년 2월 10일, 국립식량과학원, 7개 도 농업기술원(강원·충북·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 그리고 11개 업사이클링 스타트업 기업과 함께, ‘농산부산물 원료의 안정적 공급 모델 구축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미 시작된 현장의 변화
이번 업무협약에는 사과박·감귤박을 활용한 재생가죽, 커피 부산물 기반 기능성 식품, 농업부산물 건축자재, 바이오차 비료 등을 개발한 11개 기업이 참여했다. 이들 기업은 단순 아이디어를 넘어 실제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주)AEACBIO(커피 실버스킨 건강기능식품 및 화장품), (주)오슬로(건축용 패널), (주)봄젠(부패 진단키트), (주)모리프(쌀눈 지게미 마스크팩), (주)온프(사과부산물 재생 가죽), (주)나이스투잇츄(농산물 티백), (주)셀디(바이오 차 연료), (주)어라운드블루(바이오매스 신소재), 태산물산(한방차) 등 총 11개 기업의 농산부산물 기반 제품 전시도 함께 진행됐다.
기업 사업화 사례는 브라운스킨(주)과 (주)비유 두 업체에서 발표하였다.
브라운스킨은 커피박, 사과박 등을 활용해 기존 가죽보다 우수한 항균성과 강도를 가진 재생 가죽을 개발, 글로벌 브랜드에 납품하며 성장 중이다.
단순한 제품 제조를 넘어, 스타트업들이 겪는 원료공급의 불안정성과 높은 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 기반 수거·유통 소프트웨어인 ‘바이오빗Byorbit’을 개발하고 전국 4대 거점 물류 시스템을 구축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아프리카 지역의 남아공, 케냐, 그리고 모로코 지역까지도 확대해서 농산부산물에 대한 연구 및 제품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부산물 자원 순환율을 90%까지 높이고, 2029년까지 탄소 절감 및 취약계층 고용 등 약 80억 원의 사회적 가치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식회사 비유는 제주에 소재하며, 매년 발생하는 대규모 감귤부산물을 활용해 기후에 대응하는 토양관리 소재를 개발하고 있다. 감귤박의 고형물로는 토양 개량제와 피복제를, 액상 물질로는 기능성 소재와 그린 솔벤트Green Solvent를 생산하며 화장품 및 산업용 원료로 사업 영역을 확장 중이다.
특히 농진청·환경부와의 협력을 통해 업계 최초로 규제 샌드박스 승인을 받아 행정적 장애를 극복하고 안정적인 시장 진출 기반을 마련했다.
올해는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감귤연구센터와 실증 사업 및 유한킴벌리와의 협력을 추진하며, 연구 인력이 절반 이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농식품부산물을 지구 환경을 살리는 고부가 가치 산업 자원으로 전환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제는 구조를 바꿀 시간
이번 협약은 선언이 아니다. 실증을 통한 구조 전환의 출발이다.
농산부산물을 단순 폐기물이 아닌 순환자원으로 전환하는 일은 환경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산업 전략의 문제다.
기술은 이미 충분히 축적되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연결과 체계다. 앞으로 4년, 강원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 농식품연구소를 포함한 민관 연구협의체는 식품 제조·가공 부산물의 안정적 공급 모델을 통해 농업과 산업을 잇는 새로운 순환경제의 기반을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현장에서, 데이터로, 구조로 증명해 나갈 것이다.
*이 기사는 팜앤마켓매거진 2026년 3월호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