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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통주 한 병에 농촌의 미래가 담겨 있다

최근 우리나라 주류산업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맥주와 소주를 중심으로 성장해 온 주류시장이 이제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음주문화의 변화와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술 소비 자체가 줄고 있다. 국세청 통계를 보면 국내 전체 주류 출고량은 2020년 약 321만㎘에서 2024년 약 315만㎘로 1.8% 감소했다. 같은 기간 맥주는 약 156만6천㎘에서 163만7천㎘로 4.5% 증가했지만, 희석식 소주는 87만4천㎘에서 81만5천㎘로 6.7% 줄었다. 탁주는 감소폭이 더 커 37만9천㎘에서 33만5천㎘로 11.7% 감소했다. 전통주도 예외는 아니다. 온라인 판매 허용과 코로나19 이후 홈술·혼술 문화, 젊은 소비층의 관심 증가로 한때 빠르게 성장했지만 이제는 감소세가 나타나고 있다. 전통주 출고액은 2019년 531억원에서 2022년 1,629억원까지 증가했지만, 2023년에는 1,475억원으로 전년보다 9.6% 감소했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전통주 제조면허는 늘었는데 시장은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통주 제조면허 수는 2019년 1,162개에서 2024년 1,957개로 증가했다. 만드는 사람은 늘었지만 팔리는 시장은 오히려 위축된 것이다. 이는 전통주 산업이 이제 양적인 확대보다 생존과 시장 경쟁력 확보를 고민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그러나 전통주의 위기를 단순히 양조업계의 매출 감소로만 봐서는 안 된다. 전통주는 우리 농산물의 중요한 소비처이기 때문이다. 

쌀·보리·밀·수수·고구마·과실류 등은 전통주의 핵심 원료다. 특히 지역특산주가 활성화되면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지역의 술이 되고, 술은 다시 음식·관광·축제와 연결된다. 즉, “농산물 → 전통주 → 음식 → 관광 → 지역경제”라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농업은 정반대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국내 농산물 소비시장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품목이 쌀이다. 2025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3.9kg으로 전년보다 3.4% 감소했다. 밥을 먹는 양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쌀의 새로운 소비처를 찾지 못한다면 공급과잉과 가격 불안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주 시장까지 위축된다면 국산 농산물의 중요한 새로운 판로 하나를 잃게 된다. 따라서 전통주를 단순히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키는 산업’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전통주는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소비를 만들어내는 농업의 전방산업이다. 술을 더 마시게 할 것이 아니라 ‘좋은 술’을 팔아야 한다. 시대가 달라졌다. 인구 감소와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문화 속에서 전체적인 음주량이 과거처럼 증가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가치다. 소비자는 이제 단순히 ‘우리 술이니까’ 구매하지 않는다. 맛과 향, 디자인, 가격, 음식과의 조화, 스토리와 경험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전통주 가치를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첫째, 국산 농산물을 사용하는 전통주를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국산 원료 사용량, 계약재배, 지역농산물 연계 실적 등을 정책지원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농업과 양조장을 하나의 산업으로 연결해야 한다. 농가와 양조장, 음식점, 관광, 지역축제를 따로 지원해서는 효과가 제한적이다. 지역의 농산물이 지역의 술이 되고, 그 술이 다시 관광과 외식으로 연결되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젊은 소비자를 위한 혁신이 필요하다. 저도주, 전통소주 칵테일, 음식 페어링이 가능한 청주와 약주, 프리미엄 증류주 등 새로운 소비문화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넷째, 수출을 확대해야 한다. 국내 술 소비가 감소한다면 해외에서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한다. 전통주를 ‘한국에서만 소비되는 술’이 아니라 K-Food와 K-Culture를 대표하는 콘텐츠로 키워야 한다.

 

우리가 지금 걱정하는 것은 단순한 전통주 매출 감소가 아니다. 우리 농산물이 소비될 수 있는 시장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병의 전통주에는 농업이 있고, 양조장이 있고, 지역의 음식과 관광이 있다. 국산 쌀 한 톨이 술이 되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고, 그 술이 지역의 이야기가 되어 소비자를 지역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 따라서 전통주 정책은 이제 ‘우리 술을 보호하는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농산물을 소비하고 농촌의 부가가치를 높이며 지역경제를 살리는 산업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술을 많이 마시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적게 마시더라도 좋은 술을 선택하게 하고, 그 한 병의 술이 더 많은 국산 농산물 소비와 더 높은 농업의 부가가치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전통주 시장의 위기는 양조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농업의 새로운 소비시장 하나가 사라지는 문제다. 전통주를 살리는 일이 곧 우리 농산물의 판로를 지키는 일이며, 지역농업과 농촌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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