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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편집장의 글> 우리 품종, 선택받을 이유가 필요하다

좋은 품종은 언제 완성되는가?

연구실에서 개발됐을 때일까? 농가에 보급됐을 때일까?

소비자가 그 품종을 알아보고 선택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은 아닐까?

국내에서 육성한 과수·채소·화훼·특용·식량·축산 분야 품종 가운데는 품질이 뛰어나고 저마다 뚜렷한 특성을 지녔는데도 소비자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못한 품종들도 많다.

 

최근 한 과수 농가를 취재하면서 이런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농가는 정부기관이 육성한 품종이라는 점에서 가능성을 믿었고, 그 믿음으로 묘목을 심었다.

정성껏 키워 수확까지 했지만 막상 판로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어렵게 키운 나무를 뽑아내고 다른 품종을 다시 심어야 했다.

품종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소비자가 그 품종을 잘 알지 못했고 시장에서 찾는 수요가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은 품종을 개발해 농가에 보급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물론 국내 육성 품종을 알리기 위해 도매시장 경매사와 유통 관계자에게 선보이고, 품평회와 시장성 평가 등을 통해 상품성을 알리는 자리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출하박스에는 품목, 산지, 품종, 등급, 내용량, 생산자 등 여러 표시사항이 담겨 있다.

 

그런데 품종명이나 생산자 등이 적혀 있다고 해서 소비자가 그 품종을 선택하는 것일까.

“이 품종은 무엇이 다른가.”

과일은 품종에 따라 맛과 식감, 저장성, 색깔과 향이 다르다. 연구를 통해 특정 성분이나 기능적 특성이 확인된 품종도 있다. 이러한 차이는 소비자가 품종을 선택하는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국내 육성 품종’이라는 표현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 품종의 가치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소비자가 알고 싶은 것은 국내에서 개발됐다는 사실에 더해 어떤 맛을 지녔는지, 식감은 어떤지, 저장 특성은 어떠한지, 다른 품종과 무엇이 다른지일 것이다.

연구기관은 이미 이러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제는 출하박스와 포장재에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가칭 ‘품종별 홍보 표준 문구’를 제도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농촌진흥청 등 품종 육성기관이 연구와 육종 과정에서 확인한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농가와 농협·생산자단체가 출하박스와 포장재에 실제 게재할 수 있는 ‘품종별 홍보 표준 문구’를 관계기관이 함께 검토해 마련하는 것이다.

 

단순한 품종 소개자료와는 달라야 한다. 연구 결과를 소비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짧고 정확한 문장으로 바꿔, 농가가 출하박스와 포장재에 바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아삭한 식감’, ‘단맛과 산미의 조화’, ‘우수한 저장성’처럼 품종의 특징을 한눈에 보여주는 문구가 필요하다.

 

특히 성분이나 기능성과 관련된 내용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농가가 특정 성분이나 기능적 특성을 알고 있더라도 이를 임의로 ‘어디에 좋다’거나 ‘어떤 효능이 있다’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표시·광고 기준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도적 연결이 중요하다.

농촌진흥청 등 품종 육성기관은 품종별 객관적 특성과 성분 자료를 제시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표시·광고 기준에서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인지 검토할 수 있다. 여기에 농림축산식품부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출하박스와 포장재에 활용할 수 있는 기준과 가이드를 마련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제도적으로 검토된 홍보문구가 마련된다면 농가는 과대광고를 걱정하지 않고 활용할 수 있고, 소비자는 공신력 있는 정보를 통해 품종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연구와 육종의 성과가 출하박스의 몇 줄로 이어지는 제도적 연결고리가 필요한 이유다. 이제는 그 품종이 더 널리 보급되고 소비자의 선택과 판로 확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출하 박스와 포장재에 바로 활용할 수 있는 품종별 표준 홍보 문구가 필요하다. 출하 박스 한쪽에 들어가는 문구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단 몇 자면 된다.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면 QR코드로 육성기관의 품종 정보와 연결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가 가장 먼저 보는 곳에서 그 품종을 선택할 이유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품종명을 한 번 더 크게 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이름 옆에 그 품종의 가치를 함께 보여주자는 것이다.

 

박스에 활용할 수 있는 품종별 홍보 문구가 마련되면 단순히 우리 품종을 알리는 데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소비자에게는 품종별 특성을 비교하고 자신의 취향과 용도에 맞는 품종을 선택할 기회가 넓어진다. 생산자에게는 품종의 가치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수단이 되어 판로 확대와 새로운 수요 창출, 소득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 소비자가 알고 선택하고 다시 찾는 품종이 늘어날수록 국내 육성 품종의 시장도 넓어질 것이다.

좋은 품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좋은 품종이 판로를 찾지 못해 재배가 중단되지 않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다.

개발하고 보급하는 데서 끝나는 품종이 아니라 소비자가 알고 선택하며 생산자의 판로와 소득으로 이어지는 품종이어야 한다.

 

우리 품종의 진짜 완성은 어쩌면 거기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발행인 | 문학박사 최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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