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의 출입이 거의 없는 민통선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찾아왔다. 아침식사를 마친 병사들은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족구를 즐기고 있다.무심한 구름은 방향키 잃은 조타수처럼 각자의 마음속에 양 구름도 되었다가, 비행기 구름도 되었다가 사라져 간다.계절을 재촉하는 풀벌레 소리는 저마다의 세레나데를 부르며 님을 찾고, 상수리아줌마도 어느 새 다가올 계절을 맞이하여 주황색 앞치마를 두르고 겨울 채비에 분주하다.밤에 짠밥 통에 여러 마리의 산돼지들이 다녀 간 모양이다.밤새 뒤척이며, 들었던 소리 중에 하나가 바로 산돼지 아저씨들의 먹성 좋은 속삭임을 알게 되었다.아라이는 세상 밖으로 나와 처음 맞이하는 세상구경에 설레 였다. 엄마의 모습 저편으로 일부분만 보이는 하늘이지만 늦가을 하늘은 명주처럼 아름다웠다. 처음으로 대하는 낯설지만 아름다운 풍경들에 넋을 잃고 말았다.“아라이 내말 들리니” 엄마의 거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아라이는 잠시 후 대답한다.“네. 엄마 듣고 있어요.”“사랑하는 내 딸 아라이..엄마가 없더라도 아라크와 다른 형제들과 잘 지내야 한다. 너희들 주변엔 너희의 생명을 위협하는 새들 분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이 많으니 서로 돕고 살아야 모
어둠의 정적은 말이 없다휴전선을 경계로 두고 움직이는 장병들의 움직임만 때때로 분주하다.남에서 부는 바람이 분단의 한을 싣고 산마루에 맴돌다 한숨처럼 사라진다.한 밤의 정적을 깨는 길 잃은 노루가 천방지축 뛰어다닌다.어둠도 길을 잃었다.엄마의 인기척이 들리자 아라이와 형제들은 안심 섞인 푸념을 한다.“엄마. 우리만 남겨둔 채 어딜 다녀오세요?”엄마는 말이 없다.아이들은 엄마의 무관심에 다시한번 두려움을 느낀다.엄마의 입에는 처음 보는 물건이 물려 있었다. 마치 재갈을 물고 계시는 것 같아 아라이가 물었다.“엄마, 누가 엄마의 입에 재갈을 물렸나요?”엄마는 입에 물고 있던 것을 산실 위에 내려놓고 말을 이어갔다.“애들아, 이것은 재갈이 아니라 너희들을 보호해줄 위장막 같은 것이란다.이것은 상수리나무 아줌마에게 양해를 구하고 물어 온 나무 껍질이란다. 나무껍질과 모래, 먼지 등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재료를 이용해 너희들이 보이지 않게 산실 앞에 붙여서 너희들이 숨을 수 있도록 이 엄마가 물어다가 막을 거란다. 너희 들이 숨어있는 하얀 산실은 겨울철에는 눈처럼 하얗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봄이 되면 천적들의 눈에 뛰기 쉽기 때문에 이렇게 여러 가지 재료들을
엄마는 거미그물을 떠나 이리저리 왔다갔다 분주하다. 엄마가 무엇을 위해 이리 바쁘게 움직이는지 알 수 없는 나는 너무도 궁금해 엄마에게 물었다.“엄마 뭐 하세요”엄마는 대답이 없다.땅거미가 기웃기웃 서산에 그림자를 남기며 날이 저물어가기 시작했다.산이 높은 이곳에서의 밤은 다른 지역에서보다 한 시간 정도는 빠르게 찾아왔다. 적막한 산중을 감싸는 것은 고요와 어둠뿐 아니라, 계절도 성큼 다가와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해 지고 있다. 겨울이 문턱 앞까지 온 모양이다.아라이는 엄마의 모습이 궁금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옆에 곤히 잠자는 아라크를 깨웠다 “아라크야! 너 혹시 엄마가 왜 저리 바쁘게 움직이시는지 아니?”“그건 말이야. 날이 어두워지니까 숨을 곳을 찾기 위해서 그러는 거야” 아라크는 으쓱해 하며 말한다.“아라크, 그런데 왜 어제와 그제는 엄마가 거미그물에서 잠을 잤는데? 오늘 밤엔 잠자리를 바꾸는 이유가 뭐니?”아라크는 말문이 막혔다.그도 그럴 것이 늘 엄마는 거미그물 안에서 밤을 보냈기 때문에 또 다른 이유를 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아라이와 아라크 그리도 또 다른 형제들 역시 엄마의 행동이 궁금했지만, 엄마의 분주한 모습에 감히 물어 볼 엄두를
첫 만남 낯선 발자국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것을 보니 커다란 생물체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엄마는 몸을 낮추기 시작했다.고요마저 잠드는 전선에서의 발자국 소리가 묘한 긴장감을 조성하였다.한 무리의 군인들이 지나갔다.얼굴엔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으며, 옷과 철모에는 떡갈나무 잎이며, 신갈나무 잎으로 위장되어 있었다.늘 비슷한 시간이면 겪는 일이지만, 엄마는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었다.엄마는 정든 거미그물을 뒤로하며 거미줄을 타고 어디론가 길을 떠나시는 듯 보였다. “엄마. 어딜 가시나요?”뱃속에서부터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엄마는 나지막하게 대답하다.“누구니?”“아라이에요”“아라이” 그래 내 새끼이구나.“네 엄마”“그런데, 왜 우리 집을 버리고 떠나시나요”“응 우리 예쁜 딸과 아들들이 무사하게 세상 구경을 하기 위해서는 좀 더 안전한 장소가 필요할 것 같아서......”“아까 보았지. 한 무리의 군인들이 지나가는 것을...”“그래도 군인 아저씨들이 우리를 괴롭히진 않잖아요?”“그래 군인 아저씨들은 우리를 괴롭히진 않지만,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새들도 있고 노린재와 같은 곤충들도 있단다. 그 외에도 많은 동물들이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단다. “세상이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