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종마다 다르게, 맛을 완성하는 농부, 시장을 만들다① 복숭아 한 품종을 선택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 언제 수확되는지, 기존 품종 사이 어느 시기를 채울 수 있는지, 맛과 향은 어떤지, 소비자가 다시 찾을 가능성은 있는지 직접 확인한다. 좋다는 말만 듣고 대규모로 심지도 않는다. 먼저 소량을 시험재배부터 수확 후 시장성을 확인할 때까지 기다린다. 전북 남원에서 복숭아를 재배하는 최홍선 대표의 농사는 그렇게 시작된다. 현재 약 8500평의 과수원에서 40여 가지 복숭아 품종을 재배한다. 올해 봉지를 씌운 복숭아만 약 26만 개에 이르며, 봉지를 씌우지 않는 품종까지 포함하면 그보다 더 많다. 지난해 기준 상품으로 출하한 물량은 30톤 이상이다. 춘향골농협 복숭아 공동선별회장을 맡고 있는 최 대표는 공동선별 출하와 함께 시기에 따라 직거래와 온라인 판매도 병행하고 있다. 복숭아 농사 규모화 최 대표가 중학생이던 1980년대 무렵에도 부모는 복숭아 재배를 했다. 어린 시절 최 대표에게 농사는 자신의 미래가 아니었다. 부모 세대 역시 자녀만큼은 힘든 농사일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던 시절이었다. 과수원 일을 틈틈이 돕기는 했지만 자신이 복숭아 농사를 짓게 될 것이라고는
“저도 원래 신고 품종을 재배했어요. 진짜 맛있는 배를 한번 만들고 싶었습니다.” 전남 나주시에서 배 농사를 짓는 해오름영농조합법인 김지현 대표가 국산 배 품종을 선택한 이유다. 소비자가 먹었을 때 맛있다고 느끼고 다시 찾을 수 있는 배를 생산하고 싶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재배해 온 신고에서 새로운 품종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그 선택은 몇 그루를 시험 삼아 심어보는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 김 대표가 경영하는 배 과원은 약 6만 평. 이 가운데 약 4만 평에 국산 품종을 도입했다. 오래된 신고나무를 철거하고 과원을 다시 조성하면서 창조를 비롯해 슈퍼골드, 설원 등 농촌진흥청에서 육성한 품종의 비중을 과감하게 늘렸다. 6만 평 중 4만 평, 국산 품종 국내 배 산업에서 신고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2025년 기준 신고 재배면적은 전체 배 재배면적의 85.4%에 달한다. 오랫동안 농가의 생산과 출하 역시 추석과 설 등 명절 수요에 맞춰 형성돼 왔다. 이러한 생산구조 속에서 김 대표의 과감한 품종 전환은 눈길을 끈다. 과수 농가에서 품종 전환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한번 나무를 심으면 장기간 재배해야 하고 새로운 품종으로 바꾸면 안정적인 생산에 이르기까지 다시 시간이
“나는 농사를 절대로 짓지 않겠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전북 정읍시에서 약 6,300평 규모의 복숭아 과원을 경영하는 유종천 정읍시복숭아연구회장은 농업과는 거리를 두고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인생은 그를 다시 농촌으로 불러들였다. 처음 시작한 사과 농사는 태풍으로 무너졌고, 다시 일으켜 세운 과원도 또 한 번의 태풍을 피하지 못했다. 농업을 포기하고 건설 현장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다시 과수원으로 돌아왔다. 두 번의 태풍과 실패를 견딘 끝에 선택한 작목이 복숭아였다. 이제 그는 정읍을 대표하는 복숭아 농업인이자 지역 농가의 기술 교류와 화합을 이끄는 정읍시복숭아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원심 농촌지원과장은 “유종천 회장은 ‘맛이 우선’이라는 확고한 철학으로 정읍 복숭아의 품질을 이끌어 온 농업인이다. 연구회 회원들과 재배 경험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만들어 왔고, 회원들의 신뢰도 두터운 리더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읍시복숭아연구회는 회원 간 기술 교류가 활발하고 현장 실천력이 뛰어난 연구회다. 농업기술센터와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품질 향상과 신기술 보급에 앞장서며 지역 복숭아 산업을 이끄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농촌을 지키는 손길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푸른 잔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포기, 한 포기 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몇 해를 기다려야 비로소 사람을 맞이할 수 있는 초록 융단이 된다. 충남 아산에서 40여 년 넘게 토종잔디를 재배해 온 김효숙 한국생활개선아산시연합회장은 부모 세대가 일군 잔디밭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제17대 생활개선회장으로 지역 여성농업인들과 함께 봉사와 교육, 공동체 활동을 이어가며 농촌의 또 다른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잔디도 사람처럼 정성을 먹고 자랍니다. 하루만 관리를 소홀히 해도 품질이 달라집니다. 전통잔디는 2~3년을 키워야 출하할 수 있지만 한국잔디 신품종은 1년이면 수확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전통잔디는 쉽게 포기할 수 없죠.” 김효숙 회장은 “재배 기술과 출하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지만, 우리 전통잔디가 지닌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생산성과 경제성을 갖춘 신품종으로 시장을 넓히면서도 전통잔디 재배를 지속해 우리 잔디의 명맥을 잇고 있다. 아울러 신품종과 전통잔디를 함께 생산해 다양한 소비자 수요에 대응하고 고품질 제품 공급에 힘쓰고 있다. 이미용 아산시농업기술센터 농촌자원과장은 “김효숙
기획/ 고추 농사 2년 차, 탄저병 밭을 명품 고추밭으로 바꾸다 “유튜브보다 현장이 답이죠. 고추는 책과 영상만 보고 지을 수 있는 작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현장에서 배우고, 전문가에게 묻고, 직접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충남 공주시에서 건강원을 운영하며 노지 고추를 재배하는 조용호 대표는 올해 약 2,500평에 조생 극대과형 고추 1만 3,500주를 심었다. 고추 농사 경력은 이제 2년 차지만, 밭에는 굵고 균일한 고추가 빼곡하게 달렸다. 지난해 탄저병으로 농작물재해보험 처리까지 했던 밭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7월 23일 두 번째 수확이 한창이던 취재 당시, 지난해 탄저병 피해가 가장 심했던 약 5,000주 재배지에서는 병든 고추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바로 옆에 새롭게 조성한 약 8,000주 재배지에서도 고사한 고추는 거의 없다. 지난해의 탄저병 피해에도 다시 도전해 철저한 예방 방제와 관주, 토양·양분 진단, 현장 중심의 공부로 반전을 만들어냈다. 지난해 탄저병 밭에 다시 도전 현재 약 5,000주가 심어진 밭은 지난해 탄저병이 심하게 발생했던 곳이다. 주변에서는 병원균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큰 밭에 다시 고추를 심는 것을 만류했다
“친환경 재배로 맛과 품질이 탁월” 안성 블루베리 재배의 역사를 이어가는 이진선 대표는 아버지의 농장을 계승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친환경 재배를 실천하며 품질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농장 곳곳에는 쉼터 등이 조성되어 치유농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자연과 사람이 함께 머무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하지만 농업과 IT를 접목하여 친환경 블루베리 생산부터 가공까지 친환경 농업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블루베리는 대표적인 항산화 과일로 안토시아닌 함량이 높아 건강 기능성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취재를 위해 농장을 찾았을 때 이진선 대표는 이 귀한 블루베리를 아낌없이 내어주며 직접 맛을 권했다. 맛과 품질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소비자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전하고자 하는 그의 진심은 블루베리 한 알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품종 선택부터 남다른 철학 “요즘은 알이 큰 신품종이 많이 나오지만 저는 아버지께서 재배한 품종을 계속 키웁니다. 저장성이 좋고 소비자 불만이 적기 때문입니다.” 안성시 대덕면 신령리 소재에서 블루베리를 재배하는 이진선 대표는 품종 선택에도 철학이 있다. 최근 블루베리 시장은 대과종과 신품종 중심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곳
농작업 안전, 선택 아닌 필수… 아산시 농업현장을 바꾸다 매뉴얼과 실천으로 만든 안전한 농장 농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안전’이었다 배나무가 줄지어 선 과원, 작업장으로 들어서자 장갑과 마스크, 보호안경 등 보호구가 종류별로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고, 누구나 손만 뻗으면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배치돼 있었다. SS기 사용 순서와 점검요령, 관리방법 등을 적은 매뉴얼이 빼곡히 붙어 있다. 아산시 농업기술센터에서 받은 교육자료는 파일철에 차곡차곡 정리돼 있었고, 이상기 대표는 필요할 때마다 이를 꺼내 보며 작업 순서를 다시 확인한다고 했다. 농장 한쪽에는 파손된 사다리가 놓여 있었다. 사다리에는 큼지막하게 ‘사용금지’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위험한 장비를 그대로 두지 않고 즉시 작업 현장에서 제외하기 위해서다. 배나무 곳곳에도 작업자가 반드시 확인해야 할 안전표지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안전은 말이 아니라 현장 곳곳에서 실천되고 있었다. 배드림농장을 운영하는 이상기 대표는 농사를 시작한 지 이제 2년째다. 농업 경력은 짧지만 농작업 안전만큼은 누구보다 철저하다. 아산시 농업기술센터에서 배운 내용을 자신의 농장에 맞게 하나하나 매뉴얼로 만들고
농촌을 지탱하는 힘은 결국 사람이다. 농사를 짓는 농업인도, 지역을 움직이는 조직도 결국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전남 영암군에서 배와 멜론을 재배하며 지역 여성농업인과 함께하는 이경자 영암군생활개선회장은 오랫동안 몸소 실천해 온 인물이다. “회장은 앞에 서는 사람이 아니라 회원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라며 한사코 인터뷰를 고사했는데 올해 6월 마침내 만날 수 있었다. “생활개선회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많아요. 봉사도 해야 하고 회의도 해야 하고, 회원들 의견도 다 들어야 하고…. 개인 농사보다 조직을 먼저 생각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생활개선회는 단순한 친목 단체가 아니다. 농촌 여성의 역량을 높이고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펼치는 대표적인 여성농업인 조직이다. 회원 수가 많고 활동 범위도 넓다 보니 조직을 운영하는 리더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회장은 “회원 모두를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지만, 다양한 이견을 조율해야 했고, 예산 집행부터 행사 준비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원칙을 세웠다.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말 것’, ‘모든 회원을 같은 기준으로 대할 것’, ‘회장의 권한보다 조직의 신뢰를 먼저 생각할 것’. 이 원칙은
올해로 25년 차에 접어든 베테랑 농업인인 김동일 대표는 아버지의 배농사를 더욱 단단하게 키워낸 2세대이다. 과수원에서 한 해 동안 씌우는 배봉지는 무려 43만에서 45만 봉에 달한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이 엄청난 작업량을 매년 성공적으로 소화해 낼 수 있는 비결은 다름 아닌 ‘숙련된 노하우’ 그리고 새벽과 저녁에는 배나무의 생육 상황을 면밀하게 살피는 부지런함이다. 김동일 대표는 “소비자가 만족하는 배 과일을 생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함께하는 배 농업인들과 늘 소통하며 국내 소비자들에게 인정받고, 수출도 해 내는 아산 배의 명성을 지켜나간다는 것이 가슴 벅차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산원예농협 김주농 팀장은 “김동일 조합원님은 아산원예농협의 자부심이자, 지역 농업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분이다. 연간 45만 봉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배농사를 지으시면서도 품질 하나 흐트러짐 없이 최고급 배를 생산해 내시는 걸 보면, 25년 차 숙련 농업인의 깊은 공력을 매번 실감하게 된다. 특히 혼자만 잘사는 농업이 아니라 동년배 농업인들과 늘 상생하며 지역 농가의 중추적 역할을 든든히 해주셔서 늘 감사한 마음”이라고 소개했다. ‘선택과 집중’으로 승부
오영훈 대표는 “딸기는 내가 공부하고 일한 만큼 100% 소득을 보장해 주는 매력적인 작물”이라고 말했다. 기계에 의존하는 스마트팜 시대라지만, 결국 농사의 성패는 작물의 마음을 먼저 읽어내는 ‘먹이는 농사’에 달려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공주시 농업기술센터 남부상담소 유병관 팀장은 “오영훈 대표를 가리켜 배울 점이 많은 농가다. 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받으면 그걸 본인 농장에 반드시 적용해보고, 자기만의 데이터로 정립한다. 그런 치열한 연구가 있었기에 가락시장에서 최고가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본인만 잘 먹고 잘사는 농사가 아니라 지역 농업 전체의 딸기 재배기술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죽기 살기로 노력한 이유 귀농 초기는 잔인할 만큼 가혹했다. 2002년 귀농해 야심 차게 시작한 양계장은 시작 한 달 만에 태풍으로 2 동이 날아갔다. 이듬해인 2003년에는 기록적인 폭설로 남은 사육장마저 처참하게 붕괴했다. “사업 자금의 80%가 빚이었는데, 시작하자마자 다 무너졌으니 의욕 상실 정도가 아니었죠. 살기 위해 남의 땅을 빌려 벼농사 4,000평, 감자 1,000평, 고추, 밤농사까지 안 해본 게 없습니다